출판된 지 200년이 지나도록 꾸준히 사랑받고, 영화화도 되고 있는 작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오만과 편견'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고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보게 되었네요. '오만과 편견'을 읽고 난 후로 저는 제인 오스틴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고 그녀의 작품을 차례차례 읽어가고 있습니다.
제인 오스틴
1775년에 잉글랜드 햄프셔 주 스티븐슨에서 태어난 제인 오스틴은 500권이 넘는 장서를 보유한 아버지의 서재를 드나들며 문학적 능력을 키웠다고 합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읽고, 쓰고, 읽히기를 원했고 아버지 조지 오스틴은 19세가 된 제인에게 생일 선물로 글쓰기 용 책상을 선물로 주고 딸의 재능을 믿고 지지해 주었다고 합니다. 제인은 11세쯤부터 소설을 습작했고 저녁식사 후에 가족들에게 이를 들려주고 평가받는 것을 좋아했다고 해요. 이때부터 희곡, 시, 에세이, 단편소설 등 여러 장르의 글을 쓰는 습작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제인 오스틴은 토마스 리프로이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거의 결혼 직전까지 진행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둘의 관계가 끝이 나고 그 즈음 제인은 훗날 <이성과 감성>의 바탕이 되는 '엘리너와 메리앤'을 <오만과 편견>의 바탕이 되는 '첫인상'을 쓰며 본격적인 프로 작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글로 달래며 소설로 표현했나 봅니다.
제인 오스틴은 지금까지도 평론가와 학자,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작가입니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높이 평가되었고 세계 문학의 대표적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작가 서머싯 몸이 뽑은 위대한 작가 10명에도 들었고,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 평론가 헤럴드 블룸 또한 제인 오스틴을 서구 문학의 중심 중 하나로 보았습니다.
인상적인 문장과 감상평
콜린스 씨는 똑똑한 사람도, 함께 있기에 즐거운 사람도 분명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지루했고, 그녀에 대한 그의 애정도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그녀는 남편을 갖게 될 것이었다. 남자나 혼인 관계 그 자체를 중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혼은 언제나 그녀의 목표였다.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없는 아가씨에겐 오직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 대책이었고, 결혼이 가져다줄 행복 여부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해도 결혼만이 가장 좋은 가난 예방책임이 분명했다. (177p)
아직 여기에서 몇 걸음 못 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했지만 세상이 변하는 일은 원래 천천히 조금씩 지지부진해가 움직이는 일이니, 이만큼 변한 것에도 감사하며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근데, 외숙모, 결혼에 있어서 돈만 밝히는 것과 신중한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거죠? 신중함이 끝나는 지점은 어디고 탐욕이 시작되는 지점은 어딘가요? 지난 크리스마스엔 그 사람과 제가 결혼하게 될까 봐 걱정하셨잖아요. 경솔한 일이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겨우 만 파운드의 재산을 가진 아가씨와 결혼하려 한다고 그가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시잖아요. (219p)
예, 막냇동생은 아직 열여섯도 안 됐답니다. 그 애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너무 어린 게 사실이겠지요. 그렇지만 부인, 사실 언니가 일찍 결혼할 능력이나 의향이 없는 경우, 동생들이 자기 몫의 사교를 즐길 수 없다면,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가장 나중에 태어난 사람이나 가장 먼저 태어난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젊음을 즐길 권리는 있으니까요. 단지 나중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미뤄야 하다니요! 그래서야 자매 간의 우애도 서로 아끼는 마음도 길러지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236p)
이제 그녀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다아시를 생각하든 위컴을 생각하든 자기가 눈이 멀었고 편파적이었으며 편견에 가득 차고 어리석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행동이 그렇게 한심했다니!" 그녀는 외쳤다. "변별력에 대해서만큼은 자부하고 있던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똑똑하긴 하다고 자랑스러워하던 내가! 때때로 언니가 너무 너그럽고 솔직하다고 비웃으면서 쓸데없이 남을 의심함으로써 허영심을 만족시켰던 내가! 이제야 깨닫다니!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하지만 창피해하는 게 당연하지! 사랑에 빠져 있었다 해도 이보다 더 기막히게 눈이 멀 수는 없었을 거야. 그렇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라 허영심이었어. 처음 만났을 때 한 사람은 나를 무시해서 기분이 나빴고, 다른 한 사람은 특별한 호감을 표시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서, 난 두 사람에 관해서는 선입관과 무지를 따르고 이성을 쫓아낸 거야. 지금 이 순간까지 난 나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거야. (293~294p)
다아시의 청혼을 받고 거절한 후 다아시가 엘리자베스가 비난한 내용에 대해 설명해 주는 편지를 읽고 괴로워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인데, 편견으로 다아시를 바라보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부분에서 너무 공감이 되었습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다아시는 결국 좋은 사람이고, 엘리자베스의 짝이 될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였기 때문에 충격이 덜 하긴 했지만 소설 속의 엘리자베스는 본인이 만들어 놓은 편견에 스스로 갇혀 잘못된 생각을 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괴로웠을 것입니다.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편견을 갖고 오만한 판단을 내리는 일은 일상다반사로 많이 일어나는 일이고 흔히 하는 실수입니다. 이를 소재로 이렇게 즐거운 로맨스 소설을 만들어 낸 제인 오스틴의 능력이 놀랍고, 이 200년이나 더 된 스토리가 현재의 다양한 로맨스에서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 많이 가공되고 다듬어지면서 소비되고 있는 것이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소녀가 된 상큼한 기분이었고 재기발랄한 엘리자베스를 보며 덩달아 싱그러워진 느낌을 받은, 기분 좋은 독서였습니다.
아직 제인 오스틴의 세계로 들어오지 않으셨다면 강력 추천입니다. 저는 이제 그녀의 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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