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데없는'시리즈를 통해 알게 된 심채경박사의 책을 읽었다. 과학자가 쓴 교양과학서가 아닌 에세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끌었고 그녀는 어떤 고민과 사색을 갖고 살아가는지 궁금해서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자 심채경 박사
경희대학교 우주과학과를 졸업하고 우주탐사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현재는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달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tvn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으로 방송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고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그녀의 저서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도 더불어 더욱 인기를 끌었습니다.
인상 깊은 에피소드들과 감상
세상엔 다양한 직업이 있고, 그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는 한 개인으로서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간접경험하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고 소중한 일입니다. 천문학자의 일상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이번 기회도 너무나 재미있고 알찼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며 천문학 연구를 한 에피소드는 너무 인상깊었고, 이런 재미있는 경험은 역시 대학생 때 맘껏 누렸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과 부러움이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지구 기후 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조선시대는 13세기 초부터 17세기 말까지 지속된 소빙기와 상당 부분 겹친다. 빙하기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추운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1650년에서 1700년 사이에 특히 온도가 낮아서 온 지구가 추위에 떨었는데, 이 시기를 마운더 극소기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한여름에 우박이 기록된 건수를 연도별로 살펴보았더니, 과연 마운더 극소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기록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빙고! 나는 이 내용을 정리해서 보고서로 제출했고, 성적표에 백점이 찍힌 것은 이 보고서 때문이었을 거라고 멋대로 추측하며 두고두고 뿌듯해했다."
"동서양의 천문기록을 살펴보면 서로 잘 맞아떨어져서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같은 지구상에서 살아왔으니 당연히 그럴 터이다. 1604년 10월 9일, 밤하늘에 별 하나가 갑자기 나타났다. 크고 무거운 별 하나가 제 수명을 다하고 장렬히 폭발하면서 갑자기 밝아진 것이다. 이것을 초신성이라고 하는데, 폭발할 때 급격히 밝아졌다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이 초신성의 기록을 남겼는데, 같은 시기 조선 관상감에서도 이를 관측한 기록이 있다. 시간에 따른 밝기 변화를 그려보면 케플러의 기록과 일치한다. '관상감 초신성'이나 '조선 초신성'이 될 수도 있었는데, '케플러 초신성'이라고만 불리는 것은 조금 서운한 일이다.
76년마다 돌아오는 헬리혜성도 우리나라 사료에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989년 고려 성종 때의 기록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말인 1835연까지 매번 헬리혜성을 관측하고 기록했다. 아, 성실한 공무원들이여."
"천문학에 있어 동서양의 가장 큰 차이는 주체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서양은 개개인이 관측하고 기록을 남긴 데 반해, 동양, 특히 우리의 천문 관측과 기록은 국가가 주도했다. 그래서 천문 기록이 역사서 속에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더 오랜 기록인 [고려사]에도 태양의 흑점과 오로라의 기록이 나오는데, 이를 분석해 보면 태양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줄어들었다 하는 11년 주기와 일치한다. 태양 활동이 활발하면 태양 표면에 나타나는 흑점의 개수도 늘어나고 크기도 커진다. 오로라도 자주 나타나고 중위도까지 내려오기도 한다. 오로라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흑점은 눈으로도 보이기 때문에 시대를 불문하고 관측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데, 조선의 기록까지 합치면 오로라 기록 건수가 700회를 넘는다. (아마도) 지구상에서 오직 우리만 가진 놀라운 자산이다. 태양의 11년 주기는 서양에서 19세기까지 들어서야 발견되었다. 기록은 우리가 한참 앞섰는데 말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초기로 돌아가 고려의 흑점 기록을 분석해 일찌감치 온 세상에 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얕은 과학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본인의 힘을 조금 보태는 것에 많은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외국에도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소통한 미국의 '칼 세이건' 등 유명한 대중 과학 운동가가 있지만 우리나라도 점차 그런 인물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더 밝은 미래가 기대됩니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나, 유튜버 궤도 등 과학을 친근하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분들을 통해 저도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칼 세이건'의 [COSMOS]를 통해 우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런 분들이 중요하고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해 심채경박사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강의가 있다는 것을 접한 순간부터, 강의를 듣겠다고 결정하고, 백 퍼센트 출석은 아니지만 수업을 듣고 과제도 하는 동안 천문학뿐 아니라 과학 전반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혹시 있었을지도 모르는 막연한 거부감 같은 것도 좀 줄어들었다면,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과학관이나 천문대, 천체투영관을 구경하러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게 내가 비전공자에게 천문학 강의를 하는 가장 큰 목표고 보람이에요."
과학을 하는, 우주를 연구하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지구인으로서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행성 탐사를 해본 적 없는 국가의 행성과학자로서 갖고 있던 그 자격지심과 부채감을 어느 날 입 밖으로 내보이고 말았다. 한국계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유독 내게 다정히 대해주고 지지해주는 미국학자에게였다. 내 얘기에 그는 조금 놀라는 듯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에게 한 번 더 물었다. 그와 나의 공동연구자 중에는 옛 소련에서부터 활동해 왔던, 지금은 우크라이나인이 된 원로 과학자가 있다. 우주 경쟁시대 초반에는 소련이 늘 미국보다 한 발 앞서나갔는데 아폴로 우주인의 달 착륙으로 인해 상황이 역전되었을 때, 그때도 달 과학자였던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그 얘기라면 이미 나눠본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사람을 달에 보내서 기뻤다고 했단다. '우리'는 미국인도, 미항공우주국 관계자도 아닌, 인류 전체였다. 이번엔 내가 조금 놀랐다. 과연 못난 자격지심이었구나."
사실 우주 연구라는 학문, 기술을 놓고 보자면 우리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에 조금 위축되고, 우주선진국을 부러워할 수 밖에 없는, 비슷한 연구를 하는 학자로서 당연히 자격지심이 조금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본 베이스는 부러움이겠지요. 그러나 소련과 미국이 우주경쟁을 심하게 할 때 자격지심보다는 '우리'라는 큰 마음으로 이해했다는 다른 과학자의 태도를 보고 반성하는 마음. 그렇게 또 한 걸음 성장해 가는 이야기는 너무나 공감이 되고 마음이 조금 숙연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처음 제대로 알게 된 우주인 이소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상세하게 들여다보니 연구자로서, 여성으로서 힘든 시간을 겪었을 '우주인'의 통과의례라는 것이 너무나 버거웠겠고 평범한 삶을 추구하며 지내고 있다는 현재의 이야기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추천사
에세이는 가끔 소설보다 더 다양한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를 주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심채경 박사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도 그런 에세이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과학자, 그 중 천문과학자, 또 그중 여성 천문과학자라는 작은 세상을 엿보는 즐거움을 만끽한 시간이었습니다. 심채경박사가 다음 책을 또 낸다면 기꺼이 읽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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