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주제를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는 얼마나 다르게 접근하고 해석할지 궁금한 마음으로 편 책이었습니다. 세상에 저마다의 의견을 가지고 충돌하는 다양한 사람이 있는 만큼 양 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분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작은 실마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컸습니다.

5. DNA는 영혼을 복제할 수 있는가
복제인간이 만들어진다면 사회는 그 복제인간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사회적으로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과연 영혼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며, 그 영혼이 있다면 영혼은 소멸되는 것인가 진화되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신체에 깃든 영혼이라는 존재를 저는 믿지 않습니다. 사실 영혼이라는 것은 인간의 사고 안에 존재하는 개념 같은 것인데 이는 결국 '사고'라는 본질이 아닌 사고하는 형태를 신체와 구분하고자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 '사고'라는 것도 신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경작용 중의 하나일 뿐, 신체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견을 바탕으로 한다면 복제인간을 통해 완전한 인간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의견과 결을 같이 하는 느낌입니다. 아직 우리가 인간의 '사고'과정과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인공지능, 복제인간 등을 통해 똑같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가능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6. 인간, 거짓말과 기만의 천재
인문학에서 바라보는 거짓말과 자연과학의 거짓말을 살펴보며 프로이트의 거짓말에 대해서도 언급되었습니다. 사실 과학 쪽에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라 프로이트라는 무의식의 개념을 최초로 발견하고 정신분석학을 창시했다는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대에는 혁명이라고까지 이야기되었던 프로이트의 이론이 현재에는 논리가 부족하고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등의 이유로 부정되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이 독서의 재미입니다. 번외의 이야기이지만, 최재천교수님이 스스로 '기획독서'를 통해 치열하게 책을 읽으라는 말씀을 강연에서 하신 걸 봤습니다. 그때부터 조금 더 속도를 붙여서 한 권의 책을 통해 다른 책으로 이어가며 유사한 분야의 책을 더 넓고 다양하게 읽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문화는 생물학적인가 비생물학적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여기서 나누었습니다. 문화는 진화하는 것인가 진보하는 것인가와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문화는 또 하나의 생물학적인 형태로 진화해 나가는 부분이 더 크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쪽이 맞다고 특정 지어 결론을 낼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7. 예술과 과학, 진화인가 창조인가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의 '성선택론'이 재미있었습니다. 번식경쟁을 통해 진화가 이루어졌고, 상대 성의 선택을 받아야만 번식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 맞춰 진화가 되어 왔다는 이론이었습니다.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제프리 밀러 또한 리처드 도킨스의 뒤를 잇는 진화심리학계의 손꼽히는 연구자 중 하나라고 합니다. 이렇게 또 관심 가는 학자를 알게 되었고, 그의 저서인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연애' 등을 통해 진화생물학에 대해 더 넓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술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도 실용설, 제의설, 놀이설과 자연선택론, 성선택론 등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술과 과학은 진화의 결과에서 나온 것인지 진화의 과정에서 나온 것인지에 대한 관점 또한 인문학적, 자연과학적인 관점에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같은 결과를 두고 참 다양한 생각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역시 이런 책의 재미인 것 같습니다.
8. 동물의 교미와 인간의 섹스
이 챕터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동물'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사실은 실재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번식만을 위해 섹스하지 않는 동물도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또한 당장의 쾌락이 아닌 앞날을 내다보고 서열 2~3위의 수컷과도 교미하는 암컷들의 사례를 보며 동물들의 교미 또한 단순하지 않고 굉장히 복잡한 사회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9. 판도라 속의 암컷, 이데올로기 속의 수컷
현재의 우리나라를 살아가며 많이 느끼는 성갈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챕터였습니다. 19세기 생물학의 과오인 인종주의, 성불평등론, 남성우월주의, 백인중심주의 등을 통해 지금 현재의 성갈등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꾸준히 갈등을 해왔지만 슬기롭게 극복해 왔고, 해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지금의 현실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더디지만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번식에서 오히려 남자의 역할이 크지 않은 점 때문에 스스로 남성이 위기를 느끼고 가부장적, 권위주의적인 남성성을 고착화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도 신선했습니다.
10.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과거에는 타고난 성별만 있었지만 지금은 후천적으로 발현되는 성별에 대해서도 점차 인정해가는 방향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너무나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아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지만 수컷이었다가 점차 암컷이 되는 식물도 있고, 수컷이 죽으면 가장 큰 암컷이 하루이틀 사이에 수컷으로 바뀌는 산호초에 사는 물고기들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11.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소설인가 과학인가
이 부분은 앞에서 한 번 언급한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네요. 현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과학계에서 거의 퇴출되었다고 합니다.
12. 다양한 생명체와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
사회적 진화와 자연에서의 진화를 두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근대와 현대의 구분에 대해서도 살펴보기도 합니다. 아직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중 한 가지가 입양을 하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은 어떻게 하여 이런 문화를 스스로 구축하고 실행하며 사는 것일까요?
13. 21세기형 인간, 호모 심비우스의 번식을 위하여
21세기를 바라보며 세계화의 부정적인 면도 일부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세계화를 통해 오히려 다양성이 사라지게 되면서 사라지는 언어들도 있게 되고 자연파괴 등의 어두운 면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공생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심비우스 개념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감상평
초반에는 속도감 있게 잘 읽혔으나 뒤로 갈수록 집중력의 한계인지, 배경지식의 부족 때문인지 속도가 조금 더뎌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이렇게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도가 더 자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내용에서처럼 학문의 구분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나누어둔 것일 뿐, 진리가 그쪽을 향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고루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런 자리는 꼭 필요하고 앞으로의 다양한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변질되어 버린 대학의 의미에 대해서 꼬집는 부분에는 스스로 많이 찔렸습니다. 머리로는 대학에서 큰 이상을 꿈꾸며 다양한, 멋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당장 내 앞에 닥친 현실과 놀고 싶은 마음에 누리지 못한 대학 생활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큰 걱정 없이 학문에 몰두해고 아무 일 없는 때였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그 아쉬운 마음이 남아 이렇게 늦게나마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번에도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이런 접근으로 기획한 도서가 있다면 또 한 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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