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읽은 김영하의 두 번째 장편소설, '작별인사'
서울시민카드로 E-Book을 무료로 대여해 볼 수 있었지만 그동안 아이폰에서만 사용이 가능하여 활용도가 떨어져 이용을 많이 하지 않았다가 우연히 아이패드로 들어가 봤다가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아이패드에서도 E-Book 대여,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대여가능한 인기 도서 목록 중 가장 처음에 있는 '작별인사'를 다운로드했습니다.
소설이라는 기본 장르만 알고 있었고 어떤 내용인지 기본 줄거리도 모른 채 다운로드 후 읽어 내려간 스토리는 너무 예상밖이라 당황했지만, 금세 적응을 하고 부지런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줄거리
평화로운 평양의 휴먼매터스 캠퍼스 안에서 아빠와 함께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던 철이. 철이가 본인이 인간이 아닌 만들어진 휴머노이드라는 것을 갑작스럽게 인지하게 되고, 특히나 무등록 휴머노이드라는 이유로 정부의 단속을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감상평
사실 저는 SF소설이나 영화를 그리 즐기지 않았습니다.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즐겨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SF장르야 말로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에 좋은 장르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인 설정을 현실세계와 다르게 만들어 둔 상태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가? 등 이런 철학적이고도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현실의 조건을 조금 비틀어 생각해 보기에 좋은 장르라고 이제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인간인 줄 알고 살아가던 철이가 본인이 휴머노이드라는 것을, 마음의 준비 등을 가질 새가 없이 갑작스럽게 인지하게 되고, 인공지능이라는 것은 어쩌면 영생을 살 수도 있지만 철이는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마지막을 준비합니다. 어쩌면 정말 그렇게 인간이 되어버린 철이의 슬프고 처절한 이야기. 철이를 만들어 낸 아버지보다 오히려 더욱 인간다운 철이의 모습이 안쓰럽고, 조금 아름다운 느낌마저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나는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짧은 사색을 가지게 해 주었던 이야기였습니다.
인상 깊었던 대목들로 나머지 감상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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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그 직박구리 말이에요."
아빠는 [천자문]을 뒤적이다 고개를 들었다.
"그 기분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슬프기도 하고 조금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무섭기도 했어요. 마음이 그렇게 복잡했는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니까 또 금방 기분이 나아졌어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흰 종이에 네 글자를 적었다.
宇宙洪荒
"이 문장 기억나지?"
물론이었다. [천자문]의 시작인 '천지현황'의 다음 사자성어 '우주홍황'이다.
"우주는 넓고 거칠다. 그런데 [천자문]의 우주는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 말하는 그 우주가 아니란다. 집 우는 집의 대들보에서 비롯된 글자로 공간을 뜻하고, 집 주는 밭에서 싹이 움트는 모양에서 온 것으로 즉, 시간의 변화를 의미하지. 그러니까 이 문장은 공간과 시간이 넘치도록 크고 황량하다는 뜻으로 읽어야 돼. 그런데 이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특성이기도 하지. 우주의 대부분은 그냥 텅 비어 있단다."
갑자기 왜 우주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중국인들은 이 세계를 커다란 집이라고 이해했던 것 같아. 그런데 그 집이 너무 거대하고 휑하다는 걸 깨달은 거야. 나는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20세기 후반부터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를 곧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지. 두려움이나 기쁨 같은 특정한 감정을 관장하는 어떤 부위가 있을 거고, 그런 것을 찾아내면 감정의 비밀도 쉽게 밝혀질 거라고 믿었던 거야. 그러나 알면 알수록 그게 간단치 않다는 게 밝혀졌을 뿐이야. 유전자 지도만 파악하면 인간을 알 수 있다고 믿었던 만용과도 일맥상통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지. 아무리 간단한 감정이라도 그걸 느낄 때는 뇌와 몸의 모든 부분이 함께 작용해야 돼. 예를 들어 배가 고프면 초조해지고 화가 나지? 소화기관들이 뇌와 신호를 주고받기 때문이거든. 인간의 뇌는 마치 우주와 같아서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아지고 있어. 철이 네 뇌는 이제 막 생겨나고 있는 우주라고 보면 될 거야.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해. 너는 네 마음과 감정을 이제 막 알아가기 시작했어. 잘 모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앞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하다 보면 더 진실하고 깊어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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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그들과 나 사이에는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들의 관절은 연골과 윤활액 대신 인공적으로 합성한 유기화학 제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뇌에 뉴런 대신 회로가 있다는 것 등의 차이들이 있겠지만, 이미 많은 인간이 뇌에 칩을 박아 컴퓨터와 연결하거나, 잘린 팔다리 대신 인공 수족을 장착하여 높은 곳에 쉽게 뛰어오르거나 무거운 것을 가볍게 들고 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나는 인류가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이런 의문들을 품어왔다는 것을 고전 SF영화나 소설 등을 보면서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가 완벽하게 기계의 흉내를 내고, 그러다 언젠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윤리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다 저버린 채 냉혹하고 무정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때, 비록 내 몸속에 붉은 피가 흐르고, 두개골 안에 뇌수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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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는,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는 이상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동물은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다만 자기의 기력이 쇠잔해짐을 느끼고 그것에 조금씩 적응해 가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잠이 들 듯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종과는 달리 인간만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에, 죽음 이후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 아빠와 함께 보았던 20세기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도 죽음을 앞둔 휴머노이드들이 필멸의 운명을 피해보려 자신들의 '창조주'를 찾아가 삶을 연장해 달라고, 다시 말해 죽음을 미뤄달라고 요구한다. 설계자들이 휴머노이드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요소를 프로그래밍한 것은 단지 그것들이 더 잘, 문제없이 오래 작동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였지만, 그 결과 이들은 궁지에 몰린 인간들처럼 잔인하고 무정하게 자기 생존을 도모하는 데에만 몰두하게 되었고, 그럴 때 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 되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어쩌면 이들도 인간이 심어놓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신까지 믿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토록 삶에 집착하며 죽음을 피하고자 한다면, 어째서 그들이 사후 세계를 약속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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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오히려 인간을 더 집단적이고 폭력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태어난 인간들은,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다가 이야기를 매우 중독성이 강한 마약을 발명했습니다. 이야기는 인간이 겪는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은연중에 말합니다. 가장 많은 인간이 믿었던 두 종교는 모두 하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최초의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모든 이야기가 인간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주신다고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거기까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취제는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이야기는 인간의 공감 능력을 이용해 인간들을 끼리끼리 결속시킵니다. 같은 이야기를 믿는 인간들은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 다른 인간들에게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굽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모두 어떤 이야기를 믿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유대인이 음모를 꾸민다는 얘기. 조선인이 대지진을 틈타 우물에 독을 탄다는 얘기, 마녀들이 밤마다 끔찍한 저주를 행한다는 얘기. 그 결과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들이 말하는 자아니, 존재니, 의식이니, 이야기니 하는 것들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영화화 예정
작년 기사 중 김영하의 '작별인사'가 영화화될 예정이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영화사 집'과 영상화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니 좋은 영화로 또 만나보길 기대합니다. 영화화가 된다면 아마 '살인자의 기억법' 다음으로 두 번째 영화화가 되는 작품인 것 같은데 소설이 준 충격과 감성들을 또 한 번 스크린을 통해 느낄 수 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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