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작가들이 닮고자 하고 존경하는 손에 꼽는 작가들의 작가 중 하나인 레이먼드 챈들러는 이름만 익숙하고 작품을 접하지는 못했습니다. 집 안 책장에 오래도록 그 자리에 꽂혀있기만 한 그의 작품 중 하나인 '기나긴 이별'을 어느 날 갑자기 읽어볼까? 싶은 마음이 동하여 책장에서 꺼냈습니다. 영미소설은 많이 접하지도 못했고, 특히나 추리소설은 제 취향도 아니었지만 작가들의 작가인 이유가 궁금하여 책을 펼쳤습니다.
저자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
미국의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는 1888년 시카고에서 태어났지만 잉글랜드로 건너가 교육을 받고 잉글랜드 군에 소속되어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석유회사에 취직하여 부사장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렇게 나름 승승장구했지만 알코올에 매달리는 등 물의를 일으켜 44세에 회사에서 잘리게 됩니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폐인처럼 살다가 '나도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으로 쓴 단편, Blackmailers Don't Shoot(협박범은 쏘지 않는다)를 1933년 블랙 마스크지에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후로 5년간 첫 장편 빅 슬립(The Big Sleep)을 내게 되고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그 후로 레이먼드 챈들러는 히트작을 연달아 써 내려가면서 하드보일드 소설의 전설로 자리 잡게 됩니다. '콘티넨털 탐정 시리즈'와 '몰타의 매'등을 남긴 대실 해밋과 함께 하드보일드 소설의 전형을 제시한 인물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 뒤로 불후의 명작으로 길이길이 남을 기나긴 이별(The Long Goodbye)을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고 몇 년 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창조한 필림 말로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와 비견할 정도의 하드보일드 탐정으로 손꼽힙니다. 냉소, 우울, 정의감, 섬세함이 뒤섞인 성격은 그 자체로 개성이 있고 그 이후로 탄생한 수많은 탐정, 형사 캐릭터의 방향을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줄거리
우연히 만나게 된 테리 레녹스와 필립 말로. 술에 취한 그를 만난 말로는 작은 호의를 베풀면서 그와 헤어지게 되는데 그 후로 예상치 못하게 친구가 되게 됩니다. 이후 레녹스는 사고를 치고 말로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합니다. 말로는 레녹스를 믿고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게 되고 이 사고에 연루가 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예상치 못하게 간단히 마무리가 지어지고, 이 부분이 석연치 않았던 말로가 그 사건을 계속 파고들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감상평
아무래도 이 소설이 추리소설이다 보니 리뷰를 남기기가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긴 글을 남기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는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는 인간이다 보니 사실 소설, 문학 작품 등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문학 작품을 포함한 다양한 책을 읽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던 중 만나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나긴 이별'은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습니다. 게다가 추리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은, 조금 과장해서 초등학교 때 이후 오랜만인 느낌입니다. 섬세하고 깔끔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문장을 쓰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고 필립 말로라는 주인공 캐릭터만큼 까칠하고 냉소적일 것 같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다른 작품, 다른 필체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정말 그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 느껴지는 문체였습니다.
기억에 남는 문장
- 법은 정의가 아니오. 아주 불완전한 메커니즘이지. 정확히 맞는 단추를 누르거나 운이 좋다면 대답으로 정의가 나타날 수도 있소. 하지만 모든 법이 의도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목적에 이르는 절차일 뿐이지.
- "돈이란 몸집이 불어나면 자기 나름대로의 생명력을 지니고, 자기 나름대로의 양심까지 얻게 되지. 돈의 힘이라는 것은 매우 통제하기가 어려워. 인간은 언제나 돈에 좌지우지되는 동물이오. 인구가 성장하고, 전쟁에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고, 세금징수율이 높아지면 끊임없이 압박이 들어오고, 이런 일들 때문에 인간은 점점 더 돈에 좌지우지되는 거요. 평균적인 인간이라면 지치고, 두려워하게 되고, 지치고 두려움에 빠진 인간이라면 지치고, 두려워하게 되고. 지치고 두려움에 빠진 인간은 이상을 지탱할 여유를 잃게 되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 우리 시대에는 공적, 사적인 도덕률이 충격적인 속도로 바닥에 떨어지고 있소. 자기 인생의 품질이 결핍되어 버린 사람들에게 좋은 품질을 기대할 수는 없는 거요. 대량생산에서는 품질을 따질 수가 없지. 품질이 뛰어난 제품은 너무 오래 쓰니 사람들은 싫증을 내고 따라서 겉으로만 그럴싸해 보이는 것을 찾게 되지만, 그런 물건들은 금방 쇠퇴하도록 인공적으로 생산된 상업적 속임수지. 이번 해에 팔렸던 것이 그다음 해에는 유행에 뒤떨어지도록 보이게 하지 않으면, 매년 대량생산품을 팔아치울 수가 없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하얀 부엌과 가장 빛나는 욕실을 갖춰놓고 살지. 하지만 이 멋진 하얀 부엌에서 보통 미국 주부들은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 수 없고, 이 아름답게 빛나는 욕실은 탈취제, 지사제, 수면제, 그리고 비밀스러운 단체들이 화장품이라고 하는 물품들로 채워진 창고가 되어버리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포장 기술을 갖고 있다오. 말로씨,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대부분 쓰레기요."
- "깨끗한 방법으로 수억 달러를 벌 수는 없어." 울즈는 말했다.
"아마도 우두머리들이야 손이 깨끗한지 모르지만, 그 선을 쭉 따라가 보면, 남들을 벽으로 밀어붙이고 소규모로 튼튼하게 운영하는 중소기업들 자본을 다 끊어버려 푼돈에 팔아넘기게 하고, 점잖은 사람들을 해고하고, 주식지상을 조작하고, 대리점들은 싸구려로 인수하고, 관청 브로커들이나 거대 법률사무소들에게 수만 불씩 뇌물을 줘서 대중은 원하지만 부자들은 이익이 줄어드니까 원하지 않는 법을 뜯어고치는 짓을 벌이고 있다네. 부자는 권력을 의미하고, 권력은 잘못 쓰이게 마련이지. 그게 시스템이야. 그나마 있는 게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보리 비누 소매상처럼 깨끗한 사업이 아닌 건 마찬가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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