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얘기지만 고전문학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지만, 최근 민음사 유튜브 채널을 재미있게 보고 있던 터라 관심을 가지고 한 권씩 읽어볼까 싶었던 찰나. 매달 초 그 달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종료하는 콘텐츠를 확인해 보곤 하는데 그 달, 영화 '안나 카레니나'가 리스트에 있었고 그 계기로 세계문학전집 첫 시리즈로 안나 카레니나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영화를 보고 책을 보게 되었는데, 과거에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던 독자가 아니라면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비슷한데 캐스팅을 알고 난 후 소설을 읽게 되면 그 장면을 상상하기가 훨씬 수월하고, 연기하고 있는 장면이 펼쳐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반대한 스토리를 영화에 다 옮겨담을 수 없기 때문에 내용이 축약될 수밖에 없어 소설을 읽고 난 후 영화를 본다면 본인의 생각대로 스토리 축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영화에 대한 감동이 많이 반감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 레프 톨스토이
1828년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난 톨스토이는 1844년 외교관이 되려고 카잔 대학 동양어학과에 입학했다가 진급시험에 낙제, 다시 농민을 위해 일하기 위해 법학부로 전과를 했습니다. 그러나 학업에 그다지 열의가 없었고 관심분야의 책만 보았기 때문에 유급했고 결국 자퇴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위의 형 셋과 달리 당시 귀족들의 진로인 문관, 군인 중에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농촌에 틀어박히게 됩니다. 이후 4년간의 농촌 생활은 <지주의 아침(1856)>에 자세히 그려져 있습니다. 농촌생활에 열의를 가지고 농노들의 교육, 의료 등을 제공하며 온정적인 지주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농민들의 불신과 차가운 반응에 실망하여 다시 도시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다 맏형 니콜라이가 복무하던 캅카스 전선에서 군무에 종사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톨스토이는 농노 제도 없이 사는 카자크들의 삶에 큰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 풍속, 그리고 캅카스의 대자연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여기에서 쓴 글들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1851년 본격적으로 입대하여 임관하고, 복무 중 틈틈이 그의 성장기가 반영된 반자전적인 소설 3부작을 썼습니다. <유년시대(1852)>, <소년시대(1854)>, <청년시대(1857)>. 이때부터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서려고 전역 신청을 했으나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전역이 거부되고 전투에서 공을 세워 훈장을 받고, 중위로 진급합니다. 이 당시의 군 경험은 여러 작품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이때의 잔혹한 체험 때문에 톨스토이는 평화주의로 기울게 됩니다.
명문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톨스토이는 당시 러시아의 사회,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번민했으며 특권을 가진 귀족 지주는 이런 불우한 대중들에게 그 대가를 지불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그의 작품에도 반영되어 있고, 실제 그는 학교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교과서를 만들고 농민 해방 운동에도 많은 협력을 지원했습니다.
톨스토이는 1869년 필생의 역작인 <전쟁과 평화>를 완성합니다. 나폴레옹 전쟁의 러시아 원정을 소재로 한 이 역사 소설에서 톨스토이는 영웅은 역사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역사관을 내세우며 뭇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후 1873년부터 1877년까지 두 번째 걸작 <안나 카레니나>를 1878년 단행본으로 출간합니다. 단순히 불륜을 다룬 것 같아 보이는 이 소설은 1870년대 귀족계급과 러시아의 사회, 도덕, 철학에 대한 문제와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들, 상류계급의 위선적 태도와 개인의 삶에서 종교적 신념의 역할 등을 강하게 고찰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보다는 안나 카레니나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줄거리
1권부터 3권까지, 워낙 방대한 양의 분량이라 줄거리를 적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뿐더러,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큰 줄기는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안나 부부와 안나의 불륜으로 인한 갈등이 한 파트, 그리고 레빈의 삶과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 생활상이 한 파트입니다.
첫 번째 파트의 등장 인물은 안나와 카레닌 부부, 그리고 그 사이의 아들 세료자가 있습니다. 이 상류층 가족은 안나가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며 위기에 빠집니다. 불륜으로 인한 개인적인 내적 갈등과 사회 제도적인 문제들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두 번째 파트의 등장 인물은 레빈, 키티, 니콜라이, 세르게이 등 형제 중심입니다.
파트가 나뉘어 있긴 하지만 모든 등장인물이 어우러지고 그 안에서 다양한 관계를 이어갑니다. 이 방대한 작품에 제가 감동한 부분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토록 방대한 소설을 지으며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이토록 많은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살아있고, 그 당시의 시대상에 걸맞은 고민과 갈등, 번뇌 등을 보여주려는 듯한 섬세함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책을 보기 전 보았던 영화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첫 번째 파트만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통해 레빈의 파트를 접하고 그 부분에 더 많은 공감을 했던 저로서는 뒤늦게 영화가 많이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 한 편이라는 제한적인 상황에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밖에수밖에 없었을 테고, 조금 더 대중적인 소재이기도 하고 극의 제목이기도 한 안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두 파트를 모두 담아내려고 했다면 251분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나 222분의 '벤허(1862)'처럼 긴 러닝타임으로도 부족했을 것입니다.
5부 14회부터 20회까지의 부분은 따로 떼어 단편소설로 내도 좋을 만큼 저는 너무 좋았던 부분으로 기억합니다.
레빈의 형인 니콜라이에 관한 부분인데 한 번 따로 이 부분만 감상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콘스탄틴 드미트리예비치 레빈
책을 읽으며 저는 내내 레빈에 크게 공감하며 감정이입을 했습니다. 톨스토이 자신을 가장 많이 투영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시골의 농장을 경영하는 지주 겸 지식인인 레빈은 낭만주의자입니다. 시골 생활을 통해 삶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인물인데 그의 생각, 그가 다른 사람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보여주는 모습 등이 많이 공감되었습니다.
"즉 넌 개인의 이해를 원동력으로 내세우고, 난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공익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물질적인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활동이 더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어쩌면 네 생각도 옳을지 몰라. 프랑스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체로 넌 지나치게 prime-sautiere(충동적인, 프랑스어)해. 넌 열정적이고 격렬한 활동을 원하거나, 그게 아니면 아예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까." (2권 52p)
"그런 거야, 친구.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는 거지. 현재의 사회구조가 정당하다고 인정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든가, 나처럼 자신이 부당한 우위를 누리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기꺼이 누리든가 말이야." (6부 89p)
그래서 그는 자기가 무엇인지, 자기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인식할 가능성을 전혀 깨닫지도 보지도 못하면서, 그러한 무지 때문에 자살을 두려워할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그와 동시에 인생에서 자신만의 고유하고 일정한 길을 굳건하게 개척해 가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8부 509p)
'이 새로운 감정은 나를 바꾸지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도 않아. 그리고 내가 상상하던 것처럼 갑자기 나를 계몽시키지도 않아. 아들에 대한 감정과 마찬가지지. 역시 뜻밖의 선물은 없었어. 믿음인지 아닌지, 난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 감정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통을 통해 들어와 내 영혼 속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어.
난 여전히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겠지.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여전히 내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할 거야. 나의 지성소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와의 사이에도 여전히 벽이 존재할 거야. 난 여전히 나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고 그것을 후회하겠지.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 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
삶의 이치, 하나님에 대한 믿음, 인간의 선에 대해 스스로 깨닫고 이해하며 들판에 누워 눈물을 흘리던 레빈의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런 레빈이 너무 아름답고 건강하게 느껴졌고, 축복받은 삶이라고 생각하며 21세기에 살짝 레빈의 모습을 닮고 싶다 생각하며 안나 카레니나 감상을 마쳤습니다.
19세기 러시아의 모습과 현재 21세기 우리나라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낀 대목들
"난 그 부모에게 놀랐어요. 사람들의 말로는 열애 끝에 하는 결혼이라면서요."
"열애요? 당신은 어떻게 그런 구시대적인 생각을 갖고 있나요? 요즘도 열애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있나요?" 대사 부인이 말했다.
"어쩝니까? 그런 어리석은 구시대적인 방식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데요." 브론스키가 말했다.
"그런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아요. 내가 알기로 오직 이성에 따른 결혼만이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러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굴욕을 견디지 않는 한, 난 혼자 힘으로 내 아이들을 키울 수 없어. 글쎄, 가장 다행한 경우라고 해 봤자, 아이들이 더 이상 죽지 않는 것, 내가 그럭저럭 아이들을 양육해 나가는 것일까. 기껏해야 그 애들은 겨우 건달이 되지 않는 정도겠지. 그게 내가 바랄 수 있는 전부야. 고작 그것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고생이......, 인생 전체가 엉망이 되고 말았어' 또다시 그녀의 머릿속에 젊은 아낙의 말이 떠올랐고, 그 기억은 또다시 그녀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에 일말의 잔혹한 진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다락방에 두고 부모는 가장 좋은 층에서 지내는 것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부모들이 창고 같은 곳에서 지내고 아이들이 가장 좋은 층을 차지한다니까요. 부모들은 이제 자신의 삶을 가져서도 안 돼요.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내 줘야 하죠.
아이들?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아이들이 아버지의 삶을 방해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제도권 속에서 교육 받았다. 이곳에는 모스크바에 유포된 - 예를 들어 리보프처럼 - 그런 야만적인 개념, 즉 아이들에게는 온갖 화려한 생활을 시키고 부모들은 그저 고생과 걱정만 해야 한다는 그런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으레 그래야 하듯 인간은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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