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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리뷰

2023_14.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독서 리뷰 (※스포일러 주의)

by 호수의백조 202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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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이동진, 북튜버 겨울서점 등 이 책을 추천한 많은 사람들의 언급에 관심이 갔습니다. 작가도 처음 듣고, 책 제목은 더욱 낯설어 살짝 고민이 되긴 했지만, '극찬한 이유가 있겠거니' 하는 믿음으로 책을 구매했습니다.

 

저자 룰루 밀러

루이자 엘리자베스 밀러는 미국의 작가이자 과학 기자입니다. 2020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과 작업을 포함한 개인적인 회고록인 'Why Fish Don't Exist : A Story of Loss, Love, and the Hidden Order of Life'를 출판했습니다. 

 

줄거리 및 감상평

룰루 밀러는 생물, 그중에서도 특히 어류를 연구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그녀의 삶에 있었던 좌절의 순간에,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꿈과 학문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 학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를 닮고자 한다고 생각하며 저도 함께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점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급기야 스탠퍼드 부부의 이야기에서는 그를 살인협의자로 지목하기까지 합니다. 너무나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던 학자의 무너짐을 스스로 목격하게 되면서 분노하는 그녀의 감정에 크게 공감하며 함께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은 아무런 징벌도 없이 삶의 다양한 혜택을 누리고, 명성을 쌓고 마지막에 평화롭게 눈을 감기까지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결국 벌을 받게 되었죠. 정말 상상도 못 한 형벌이었는데요. 그가 연구한 물고기는 사실,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다다르다 정말 책을 덮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책을 손에 잡은 지 나흘 만에 바르게 읽어 내려갔습니다. 

긴 이야기를 이렇게 축약해놓고 보니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의 흐름과 그 안에서 작가가 느꼈을 마음의 변화들, 그리고 그 이후 깨달음을 얻기까지 폭풍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 같습니다. 오히려 너무나 소설 같은 이야기에 오랜만에 빠져들어 읽었고, 아직 이 책을 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강력히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제가 스포를 해버렸지만, 알고 봐도 놀랍고 빠져들게 되실 거예요.

 

기억에 남는 문장들

 

"실제로 아가시가 쓴 글을 보면 그 생각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분류학의 작업은 '창조주의 생각들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윈은 이렇게 썼다. '이종교배한 종들은 무조건 생식능력이 없다고도, 불임성은 창조주가 부여한 특별한 자질이자 창조의 신호라고도 주장할 수 없다.' 이윽고 다윈은 종이, 그리고 사실상 분류학자들이 본질적으로 불편의 것이라 믿었던 그 모든 복잡한 분류 단계(속, 과, 목, 강 등)가 인간의 발명품일 뿐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끊임없이 진행되는 진화의 흐름 주위에 인간이 우리 '편리'하자고 유용하지만 자의적인 선들을 그었다는 것이다. 그는 'Natura non facit saltum(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다윈에 따르면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불면의 경계선도 없다."

 

"그 47초 사이에 창세기가 뒤집혔다. 그가 꼼꼼하게 이름을 지어줬던 물고기들이 다시금 형체 없는 미지의 존재들로 돌아갔다."

 

"버지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팀 윌슨은 이야기를 살짝 조정하는 것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에 감명받아 그중 가장 극적인 결과들을 모아 <방향 바꾸기 Redirec>라는 책을 펴냈다. '스토리 에디팅'을 받은 대학생들은 더 높은 학점을 받고, 중퇴하는 비율이 줄었으며, 심지어 여러 해 뒤에는 건강이 더 좋아졌다. 직장인들은 출근하는 비율이 더 높아졌다. 또 정신적 충격을 입은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벌어진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수정하도록 가르치자 평온한 감정을 회복하는 시간이 더 빨라졌다.

-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괜찮을까요? 내가 윌슨에게 물었다.

- 해로울 게 뭔가요? 두려움을 잠재워주고, 미래에 적응을 방해하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 문제 될 게 없다고 봐요.

- 작은 거짓말이 큰 효과를 낸다고요?

- 물론이죠! "

 

"나는 그에게 통쾌하게 반박해 줄 말이 있었으면 싶었다. 현란하게, 당신이 틀렸다고 말해줄 방법이. 우리는 중요하다고, 우리는 사실 아주 중요하다고 말해줄 방법. 그러나 주먹이 올라가는 게 느껴지자마자 내 뇌가 주먹을 다시 잡아당겼다. 왜냐하면 당연히, 우리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우주의 냉엄한 진실이다. 우리는 작은 티끌들, 깜빡거리듯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우주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이 진실을 무시하는 것은 정확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가 자연 위에 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일까? 구름도 생명이 있는 존재일 수 있을까? 누가 알겠는가. 해왕성에서 다이아몬드가 비로 내린다는데. 그건 정말이다. 바로 몇 년 전에 과학자들이 그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과학자의 딸인 나로서는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내가 물고기를 포기할 때 나는 과학자체에도 오류가 있음을 깨닫는다. 과학은 늘 내가 생각해 왔던 것처럼 진실을 비춰주는 횃불이 아니라, 도중에 파괴도 많이 일으킬 수 있는 무딘 도구라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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