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교수님을 보고 있으면 백조가 떠오릅니다.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가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쉬지 않고 발을 움직이며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대부분 잘 알고 있죠. 그러나 발이 보이지 않는 동안은 우아하고 멋있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 모습이 제가 꿈꾸는 모습과도 겹치기 때문에 더욱 동경하게 되는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너무나 태연하고 쿨 해 보이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몰래 열심히 공부하고 코피 쏟는 고3의 모습 같은 모습이랄까요...?
나이를 먹을수록 공부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고 갈증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어쩌면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주어진 삶 안에서 원하는 모습을 갖추고 싶은 조바심인 것이죠. 이것이 긍정적인 결과로 드러날 수 있도록 오늘도 성실하게, 강박적으로, 치열하게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책을 펼쳐봅니다.
1부 공부의 뿌리
최재천교수 본인의 경험을 통해 이해한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현재 MZ세대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됩니다. 민도가 향상되었다는 것은 사회 전반에 좀 더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는 안희경작가는 특히 요즘 20대가 '공정'에 민감한 것도 비슷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갑질에 예민하고 남에게 무안 주는 태도를 언짢아하는 것은 문제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얘기에 절반 정도는 공감하면서 요즘 MZ들의 특징들이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닌데 너무 기성세대와 세대 갈등 프레임을 씌우려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최재천교수의 외국 경험들을 토대로 서구사회와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이야기가 많이 언급됩니다.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성장과 부에 집중해 기업과 정부가 함께 움직이지만 서구사회는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진국들이 항공우주나 다른 기초 학문에 투자해서 장기간에 걸쳐 성과를 조금씩 낼 수 있는 것인데, 이런 불모지 같은 우리나라에서 ㅅ스로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전투기를 날리고 인공위성을 날리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대단한 나라이긴 한 것 같습니다. 미국국립보건원은 130여 년 동안 기초 과학 연구에 투자한 결과 이번에 화이자와 모더나가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는 이야기, 이렇게 장기적으로 공공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투자를 우리도 공격적으로 할 수 있는 때가 오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까마득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문과나 이과 모두 수학을 필수로 이수하기 때문에 생태학 수업에서 2차 방정식, 미적분이 필요한 과제를 내줘도 충분한 시간만 준다면 학생들이 미적분학 책을 읽으면서 과제를 수행해 오지만 우리나라의 서울대학생들은 결국 아무도 과제를 수행해오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웃픈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지금처럼 문/이과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융합, 통섭이 강조되는 때에 이제부터라도 천천히 문/이과의 경계를 옅게 만드는 방향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머리가 조금이라도 말랑말랑할 때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원리 등을 경험해야 더욱 기억에도 오래 남고 나중에 전공 분야에서 활용하기에도 용이할 테니 말이죠.
2부 공부의 시간
"저는 공부의 구성 요소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젊은 친구들,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어차피 조금은 엉성한 구조로 가는 게 낫다. 이런 것에 덤벼들고 저런 것에 덤벼들면, 이쪽은 엉성해도 저쪽에서 깊게 공부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쪽과 저쪽이 얼추 만나더라.' 깊숙이 파고든 저쪽이 버팀목이 되어 제법 힘이 생깁니다."
이 챕터에서는 최교수님이 육아를 병행하며 교수 생활을 했던 애로사항을 많이 얘기하셨습니다. 지금보다 10~20년 전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분위기가 다르긴 하겠지만, 서울대 교수들이라면 배울 만큼 배우신 분들일 텐데도 육아와 병행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하니 21세기인 지금 곳곳에 아직 어려움이 많은 것이 짐작이 됩니다. 그런 힘든 환경에서 그 당시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간 최재천 교수님의 행동에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습니다.
3부 공부의 양분
빡세게 독서해야 한다는 최교수님의 의견.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는 책을 그늘에 가서 편안하게 보는 건 시간 낭비이고 눈만 나빠진다, 치밀하게 기획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 100세 시대에 20대 초에 배운 지식으로 수십 년 우려먹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책을 보면서 새로운 분야에 진입해야 하고 씨름하는 '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세요. '지식의 영토를 넓힌다'는 접근은 너무너무 공감하고 저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어 괜히 뿌듯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최교수님은 읽고, 쓰고, 말하기를 굉장히 강조하십니다. 생각해 보면 대학에서 그걸 충분히 배우고 이후의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그 분야에 더 근육과 살이 붙었어야 하는데 그럴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이렇게 부족한 실력이지만 글을 끄적이면서 성장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오랜 약점인 '토론'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언급됩니다. 이 토론이 선거가능연령이 낮춰진 것을 계기로 교실 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는데요. 그것이 정말 현실화된다면 사회로 나오는 성인들이 우리보다 조금 더 성숙한 상태로 나오게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4부 공부의 성장
최교수님이 고등학교 때 우연히 미술반에 들어가서 잠깐 경험을 한 것이 나중에 민벌레 연구에 도움을 주고, 후에 다양한 전시회 기획자도 하고 미술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도 하게 되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평생 딴짓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한 덕이라고 얘기한 부분에서 정말 쓸데없는 시간이라는 것은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극강의 효율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저는 적절한 딴짓이란 어느 정도인지 생각하며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에 또 고개를 저었습니다.
5부 공부의 변화
"2014년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 선생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18세기 율업의 지식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의 총량은 요즘 <뉴욕타임스> 주말판보다 적다'라고요."
"흔히 '왜 지금은 폴리매스 ploymath, 다방면에 능통한 사람으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정약용 선생님 같은 분들이 안 나올까'를 질문하는데요. 그런 분들이 활약하던 16, 18세기에는 지식의 총량 자체가 대단히 크지 않아서 한 사람이 상당히 여러 분야를 건드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불가능하죠."
MZ세대의 문해력이 약해졌다는 문제에 대한 해석으로 이런 대화를 최재천교수님과 안희경작가님의 대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정보가 워낙 많다 보니 이것저것 읽고 접하며 스스로 편집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취하는 세대이다 보니 과거 명저 한 권을 읽고 흡수하는 방식과는 아주 다르게 접근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단순히 쇼츠 영상, 책을 읽지 않는 원인 등으로 생각해 볼 수가 없는 것은 많은 기성세대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 부분은 연령대를 구분 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미국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를 예로 들었습니다. 앨 고어의 룸메이트는 영화배우가 된 토미 리 존스였습니다. 앨 고어를 뽑고 그를 훌륭하게 만들려고, 거름으로 토미를 뽑은 겁니다."
"'메기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북유럽 해역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이 청어인데, 바다에서 잡은 청어는 항구에 도착하는 동안 대다수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따라 들어온 메기가 있던 수족관의 경우 꽤 많은 청어가 항구까지 살아 있었다고 해요. '한 조직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효과'로 '메기 효과'라는 말을 씁니다. 누군가 선생님 말씀을 언뜻 들으면 '공부 잘하는 아이를 위해 공부 못하는 아이가 희생해야 하는가? 성적은 낮지만, 창의력이 뛰어나거나 특기가 있는 아이들이 또 희생해야 하는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성적 중심으로 뽑는 대학 입시가 바뀔 가능성이 없는 지금,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숨통을 여는 작업은 양쪽 모두에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쟁에 매몰된 교육 문화를 흔들 단초가 될 것 같습니다."
하버드 입학사정관제도와 앨 고어의 예가 재미있었습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밑거름 역할을 하기 위해 토미 리 존스를 희생시킨 것이 아니고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기 위해 토미 리 존스를 뽑은 것이라는 것. 다양성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결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좋아 보이는 입학사정관제도도 그 출발 의도는 불순했다고 합니다. 점점 다듬어지면서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지금은 다소 불편한 시선과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결국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조금씩 행동을 해 나가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6부 공부의 활력
좋아하는 것을 찾는 법에 대해 최교수님은 악착같이 찾아보라며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아나운서를 해볼까 해서 봉두완아나운서를 직접 찾아간 이야기. 집에서 외교관을 하면 좋겠다고 얘기해서 대사관에 찾아가 외교관은 무엇을 하는지 알아본 이야기. 그리고 하루살이 연구의 대가인 조지 에드먼즈 교수가 한국에 왔을 때 일주일간 조교를 하며 그분을 보고 자신의 길을 발견하였고, 그의 조언대로 펜실베니아주립대에 합격하여 유학에 오르게 된 이야기까지. 악착같이 본인의 길을 찾은 그 모습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지금처럼 정보가 넘치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직접 부딪혀서 정보를 수집하고, 경험하면서 스스로를 위한 길을 찾아간 그의 열정과 실행력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과거의 저를 후회하지는 않지만 아쉬움이 남는 모습이 있기에 뒤늦게라도 제가 원하는 삶, 원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교수님의 적극성을 본받아 저도 더욱 악착같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무리
"선생님과 공부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 공부, 교육, 학습, 배움, 가르침 등 여러 단어를 썼습니다. 그러면서 스며들듯 제 안에서 일어난 생각이 있는데요. 이 단어들을 세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진한 자각입니다. 공부란 한 사람을 성숙시키는 길이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개체들이 모여 사는 이 세상을 사려 깊게 만드는 도구 같아요. 공부가 익을수록 우리는 관계를 보살피는 방향으로 나아가겠죠. '삶으로서의 공부'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태도를 가까이에서 보며 공부가 축적되면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지를 감지해 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상냥함과 겸손한, 강직함에 감동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책을 마무리하는 안희경작가의 의견에 100% 공감하며 책을 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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