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애정하는 이동진평론가가 추천하는 책이라 올 해의 첫 책 쇼핑에 함께 온 책, 페이크와 팩트.
지난달에 리뷰를 올리기도 한 ⎡모두 거짓말을 한다⎦와 결이 비슷할 것 같기도 했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하며 두꺼운 이 책을 펼쳤다.
참고문헌 등을 제외하면 약 500페이지 정도의 책이라 가볍게 읽을 두께는 아니지만 책의 내용은 가까운 현실의 이야기를 많이 녹여내고 있어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넘쳐나는 거짓 정보들과 우리를 노리는 불순한 세력들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잘 구분 짓고 판단하여 내 삶도 지켜내고 나아가서는 사회의 안전 등을 지켜내기 위한 지침을 주는 책이라 현대인들이라면 모두 꼭 한 번 읽어봐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정말 너무도 복잡하기에 눈뜨고 코베이는 건 한 순간이니까.
저자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아일랜드의 물리학자이자 생물통계학자, 암 연구자인 저자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는 '역경에 맞서 과학을 옹호한 공로'로 존 매덕스 상을 수상했으며, 회의적 탐구위원회의 회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책에서도 예시로 나와 있는 반불소 캠페인과 의료용 대마초 합법화 캠페인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백신 거부 운동을 반대하는 데 목소리를 높여왔으며, 유사 과학을 이용해 자폐환자와 암 환자들을 편취하는 이들에게 주목해 왔다. 과학으로 소통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정보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편견 때문이며,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편견 등이 기후변화, 원자력, 총기 규제, 예방 접종 등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사안들을 받아들이는 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밝히고 과학적 방법들을 더 잘 이해하여 이 상황을 함께 극복해 나가자고 주장한다. 저자는 현재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가디언⟫ 등 미국과 영국 유수의 매체에 과학을 비롯한 정치와 사회문제 등의 폭넓은 주제로 기고하고 있다.
페이크와 팩트
책을 소개하는 초반부터 독자의 관심을 크게 끌어당길 수밖에 없는 흥미로운 사례들을 통해 인간의 올바른 판단, 그릇된 판단으로 벌어질 수 있는 큰 사건들을 보여준다. 핵전쟁에서 인류를 구한 러시아 영웅 2명과 중국에서의 참새와의 전쟁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재미있는 사례들이라 초반의 몰입도를 확 끌어올려 주었다.
1부에서는 오랜만에 삼단논법 등의 논리 구조를 설명하며 논리의 부재 혹은 잘못된 논리 구조를 통해 부정확한 정보들이 전달되고 이로 인해 음모론 등 다양한 사회의 악영향들을 또 사례들과 함께 설명해 준다. 그중에서도 타인을 향해 쉽게 비난을 하고 그렇게 한 개인을 망가뜨리게 되는 린제이 스톤의 사례가 오랜 여운을 남겼다. "그는 윤리 의식이 부족하다. → 나는 그를 공격했다. → 따라서 나는 도덕적으로 옳다.'는 생각을 통해 개인에 대한 비난에 대해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스스로를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에서도 쉽지 않게 볼 수 있는 문제라 더욱 여운이 남았던 것 같다.
2부에서는 권위에 기댄 오류, 환원 오류, 흑백 논리, 잘못된 인과관계의 오류 등 우리가 쉽게 빠지는 오류로 인해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진 사례들을 소개해준다. MMR백신과 자폐아와의 인과관계를 오인하여 부모들이 자녀의 예방 접종을 거부하게 되어 유럽에서, 미국 등에서 홍역으로 사망과 입원한 어린이들이 급증한 사건이 비교적 최근인 1998년~200년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도 놀라웠고, 그 사건의 영향이 2011년, 2019년까지도 이어졌다는 것이 무섭기까지 했다. 홍역은 이제 역사 속의 질병이 되어 2000년 초 부모들의 문화 사전에는 홍역에 걸려 죽거나 영구 장애를 입은 어린이의 모습은 본 기억이 없고, 자폐는 일상에 너무나 자주 등장하여 왜곡된 정보를 쉽게 받아들이고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서도 안타까웠다. 인간이 이렇게도 맥없이 멍청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자신감도 하락했던 것 같다.
3부에서는 확증편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SNS나 유튜브를 통해 우리도 점점 확증편향에 갇혀간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들 접해왔는데 나도 자유롭지 않은 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있을지 궁금해하며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우리는 정체성 보호 인지 성향 때문에 점점 확증편향되어 이념적 동기가 우리의 추론 능력을 왜곡한다고 이야기한다. 자아감과 신념을 구분하기는 어려우며, 이에 따라 잘못된 태도를 고수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위협할까 봐 대안을 지지하기 꺼리게 된다는 내용이 숨기고 싶은 마음을 들킨 것처럼 많이 찔리기도 했다.
4부에서는 확률과 통계의 위험, 잘못된 숫자적 접근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너무 안타까운 사례인 영국의 샐리와 스티브 부부의 이야기는 우리가 강력한 도구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잘못된 판단을 얼마든지 내릴 수 있으며, 그 잘못된 판단을 의심하지 않고 수용하였을 때 어떤 위험과 어떤 부정적인 결과가 일어날 수 있는지 너무 잘 보여주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뜻하지 않는다"는 진언을 반드시 새겨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 그리고 건강에 관심이 많은 내가 오히려 통계적 장난질에 당하기 쉽다는 것도 걱정되었다.
5부도 생각지 못했던 화두를 나에게 던져주었다. 기계적 중립의 위험성. 정치정당이나 양 쪽이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경우 언론은 중립을 지키기 위해 비슷한 시간, 비슷한 지면을 할애해 양쪽의 주장을 언급하고 전달하지만 이는 가짜뉴스 혹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려는 편에서는 너무나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는 것. 무조건적인 중립이 오히려 사회적인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도 혼란을 가져왔다. 그러면 중립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이 언급하고 있는 내용 전체를 통틀어 사회인으로서 이 부분을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명확히 서지 않았다. 역시 나는 아직 사회인으로 더 배우고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느꼈다. 그리고 5부에서는 가장 충격받은 사례인 샌디훅 총기난사 사건으로 시작된 음모론도 언급되었다. 정말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영화 같은 이야기에 책을 읽으면서도 고개를 여러 번 저었다... 확증편향이 또 정신 질환과 만났을 때 사회에 얼마나 큰 비극이 생길 수 있는지, 이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일이라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하는지 막막하기도 했다.
6부에서는 이제 이 많은 어려움들을 우리가 어떻게 분석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해 준다. 결국 우리는 모두 '과학적 마인드'를 장착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과학은 한 분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모든 정보를 대하는 태도, 학문의 기본자세 등을 의미한다. 이 '과학적 마인드'를 교과과정에서 공통과목으로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공부를 하든 어떤 일을 하든 기본이 되는 자세로 우리가 모두 과학적 마인드가 튼튼해져야 이 복잡한 사회를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독서 소감
가짜뉴스와 잘못된 믿음을 우리에게 전파하려는 사람들, 유사 과학 등으로 우리의 지갑을 노리는 사람들 등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깊이 들여다보고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믿지도 말고, 현 상황을 너무 낙관하지도 말고 유비무환의 자세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책의 마무리에서 저자는 이야기한다. 분석적 사고를 활용하면 가장 해로운 세계관의 손아귀에서 스스로 해방될 수 있다고. 우리는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서라도 더 부지런히 머리를 깨우고 눈을 똑바로 떠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우리 스스로를 수많은 위험과 함정에서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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