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최근에 읽은 '겨울'에 관한 책 두 권의 리뷰를 함께 들고 왔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읽게 된 에세이 1권과 소설 1권인데요. 각자 우리의 인생을 살면서 지나게 되는 '인생의 겨울'이라는 시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워 같이 리뷰를 하게 되었어요.
특별히 제가 현재 인생의 겨울을 겪고 있는 건 아닌데 공교롭게도 이런 책을 몰아 읽게 되었네요.
그러나 겨울은 겨울에 대비하면 너무 늦기에, 아직은 겨울이 오기 전에 이런 책을 통해 시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언젠가는 다가올 저의 겨울이 오기 전에 읽게 되어 참 다행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Wintering)
캐서린 메이는 '인생에 대한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는 영국의 에세이스트입니다.
일과, 육아 그리고 인간관계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30대의 어느 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진단을 받습니다.
그녀의 책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는 그녀가 진단을 받기 전, 장애 징후를 스스로 어렴풋이 느낀 작가가 험준하고 가파른 영국의 해안길을 걸으며 자신의 상처와 인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여정을 기록한 일종의 회고록이라고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숭고한 시선과 섬세한 문장으로 그녀는 깊은 통찰이 빛나는 책이라는 평을 받고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갑작스럽게 찾아온 인생의 힘겨운 순간을 '겨울'에 빗대어 쓴 에세이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wintering)」는 영국과 미국에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하네요. 이 책을 계기로 작가는 팟캐스트 진행을 맡게 되고 꾸준히 책을 출간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인생에서 몇 번의 혹한기쯤은 겪기 마련입니다. 그런 계절이 왔을 때 스스로 그것을 느끼고 인정하고, 때로는 즐기면서 이겨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할텐데요. 그때를 위해 윈터링에 대한 경험들을 나누고 준비하는 이 책을 미리 읽어둔 것이 분명 작더라도 힘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껏 몇 번의 겨울은 스스로 잘 이겨내 여기까지 왔겠지만 조금 더 건강하고 행복한 윈터링을 위해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겨울이 왔을 때, 그 것이 끝이 아님을, 순환의 한 단계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름을 보내고 곧바로 차가운 겨울을 대비하는 나무처럼 현명하고 부지런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계절이 다가옴을 느끼는 우리만의 센서를 늘 켜둘 줄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센서가 잘 작동하는지 평소에 매일 점검해 볼 수는 없고, 규칙적인 루틴을 통해 본인의 생각과 신체 반응 등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가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길고 추운 겨울을 보내는 북극권, 북유럽의 겨울 나기를 보여주며 그 지혜를 공유해 줍니다. 그들은 이미 긴 겨울을 나기 위한 노하우가 세대를 거쳐 쌓이고 체득되어 있기에 겨울을 대하는 자세가 일반 평범한 4계절을 누리는 우리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그만큼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음에 남는 문장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몇 가지만 함께 읽어볼게요.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어디쯤에선가 넘어지게 되고, 겨울은 그렇게 조용히 삶 속으로 들어온다. (9%)
혹독한 겨울은 떄로는 우리에게 이롭게 작용한다. 따라서 무턱대고 겨울을 무의미하고 신경이 마비되는, 의지박약의 나날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 시기를 무시하거나 없애버리려는 시도도 멈춰야 한다. 겨울은 실재하며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겨울을 삶 안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10%)
우리는 습관적으로 우리의 인생을 직선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하나의 긴 행진으로 보고, 힘을 키워나가다가 서서히 젊음의 아름다움을 잃고 그 힘을 내려놓는 과정이라 여긴다. 이것은 잔인한 것이다. 삶은 숲을 통과하는 여정처럼 구불구불하다. 한창 울창해지는 계절이 있는가 하면, 잎이 떨어져 나가서 앙상한 뼈를 드러내는 계절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잎은 다시 자라난다. (33%)
★그러나 행복이 하나의 기술이라면, 슬픔 역시 그렇다. 아마도 학창 시절을 거치면서, 혹은 힘든 일들을 거치면서, 우리는 슬픔을 무시해야 한다고, 책가방 속에 슬픔을 쑤셔 박아놓고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때때로 그 또렷한 외침에 귀 기울이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윈터링이다. 슬픔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 그것은 슬픔을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의 요소로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우리의 경험 중 최악의 경험을 응시하고, 최선을 다해 그것을 치유하고자 애쓰는 용기다. 윈터링은 우리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을 칼날처럼 첨예하게 느끼는, 직관의 순간이다. (53%)
이 뒤로도 좋은 문장들이 많았지만, 슬픔도 하나의 기술이라며 윈터링을 설명하는 이 문단이 저의 최애입니다. 다른 문장들은 이 책을 직접 읽으면서 한 번 느껴보세요.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문미순 작가는 2013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한 후 2021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첫 소설집인 「고양이 버스」를 펴냈습니다. 그리고 제19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처음으로 장편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출간했습니다.
치매 어머니를 간병하는 50대 여성 명주와 뇌졸중 아버지를 간병하는 20대 남성 준성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간호를 하면서 직접 본 간호하는 가족과 간병인들의 모습을 통해 '간병과 돌봄'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본인 혹은 가까운 주변에서 간병 생활을 한 사람들을 많이 보셨을 텐데요. 그 간병 생활이 단기적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로 이어지게 되면 어떻게 생활이 힘들어지게 되는지, 다양한 영화나 신문기사 등을 통해 익히 알고는 계실 겁니다. 그런 이야기를 치명적으로 가슴에 꽂히도록 이야기를 잘 풀어쓴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하루 만에 다 읽은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간병인의 어려움을 주된 골자로 다루긴 하지만 세상의 소외된, 경제적인 어려움과 신체적인 어려움으로 가족들이 돌봐야 하는 많은 개인과 그 주변의 문제들을 조금씩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도 언제라도 그런 사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에 마음이 무겁고 덜컥 겁도 났습니다.
돌보는 부모님이 죽고 차라리 고아가 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주인공의 대사엔, 너무 아파 중간에 책을 덮기도 했습니다. 너무 아프지만 나라도 그런 생각이 날 것 같다는 괴로움이 더욱 컸던 것 같아요.
책을 보다 중간 중간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한숨을 내쉬거나 안타까움의 탄성을 내며 속이 상하고 안타깝지만 멈출 수 없는 독서를 오랜만에 했습니다.
가족을 돌보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인생의 겨울을 보내는 인물들의 방식과 생각을 함께 공감하고 느끼는 소설이었어요.
그러나 결국 그 겨울도 끝이 날 것이고, 눈은 녹고 결국 봄이 올 거라는 믿음과 희망. 그것 또한 느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내용을 스포하게 될까 봐 조심스럽게 몇 문장 공유해 보고 리뷰를 마쳐야겠네요.
하지만 지금 명주는 고개를 세차게 내젓고 있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겨울 숲의 청량한 바람, 눈꽃 속의 고요, 머리 위로 내려앉는 한 줌의 햇살, 들꽃의 의연함, 모르는 아이의 정겨운 인사 같은 것들이었다. 자신이 아직은 더 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은,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 있고 싶은 이유였다. (138p)
이게, 이게 제가 아버지를 보살피면서 산 대가인가요? (198p)
말 안 들으면 혼자 두고 도망가버릴 거라는 말, 진짜 안 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았는데...... (220p)
아버지가 살아낸 인생은 그것대로 하나의 인생이니, 너도 네 삶을 스스로 짊어지고 살아가라는 의미로. 화려하지 않아도, 드러낼 만한 인생이 아니어도 모든 삶은 그대로 하나의 인생이니까.(233p)
이제 정말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
특히 잘 어울리는 책이라 두 권 모두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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