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는 기대하고 있던 신작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를 보기 위해 오랜만에 영화관에 다녀왔습니다.
약 5년 전 시네마천국을 보고 너무 아름다운 영화음악에 감명받고 눈물 흘리며,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이름을 기억하며 그의 영화 음악을 찾아봤었죠. 그의 영화음악이 나오는 영화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워낙 유명한 음악들이 많다 보니 음악만 즐기기에도 훌륭했습니다. 그러다 2020년 엔니오 모리꼬네의 타계 소식을 접하고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앞섰습니다.
그런 그의 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개봉한다고 해서 너무 기대하며 예매를 했습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생애
엔니오 모리꼬네는 1928년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 아래에서 자라며 트럼펫을 배우고, 음악을 배우게 되었다고 해요. 아버지는 클럽 등에서 트럼펫 연주를 하며 경제활동을 했는데 아버지가 아파서 못 나가거나 하면 어린 엔니오가 대신 나가서 트럼펫을 연주했다고도 합니다. 영화에서 엔니오의 인터뷰 장면에서 이 시절을 언급한 장면을 보면 이때의 기억은 엔니오에게 아픈 추억으로 남아있는 듯했어요. 생계를 위해 어릴 때 그런 곳에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었겠죠. 그 후 엔니오는 음악원에 다니며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고 트럼펫 연주를 전공하여 음악원을 졸업한 후 작곡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작곡과에 재입학해 페트라시 교수의 지도 하에 작곡 공부를 하게 됩니다. 밤에는 생계를 위해 트럼펫 연주를 하러 다니고 다음 날 학교에 나가 공부를 하는 등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엔니오는 이때부터 성실함이 길러진 것일까요? 엄청난 속도와 엄청난 양의 작업량을 위한 체력과 성실함이 아마 이 시절을 토대로 그의 몸속 깊이 박히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엔니오는 작곡 학위를 받고 졸업한 후 대중음악 편곡을 하면서 음악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승 페트라시나 동기들로부터의 평가가 걱정되었는지 초반의 그는 가명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재능을 통해 다양한 대중음악 가수들과 협업을 하며 인지도를 쌓아갔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장편영화를 시작하게 된 것은 1961년 루치아노 살체의 '파시스트'의 음악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후 1964년 세르지오 레오네감독의 '황야의 무법자'를 통해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함께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서부영화 하면 떠오르는 기타음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 후로 그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많은 작품을 함께 하게 되고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까지 함께 작업하게 됩니다. 그 사이 다양한 영화음악을 만들었으나 또 한 획을 긋는 작품을 발표하게 된 것은 롤랑 조페감독의 '미션'을 통해서였습니다. 사라 브라이트만의 '넬라 판타지아'로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지도 모를 '가브리엘의 오보에'
가 나온 영화가 바로 '미션'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사라 브라이트만은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편지를 여러 번 보내 부탁했다고 해요. 그녀의 지극 정성에 감동해 엔니오 모리꼬네가 3년 뒤 수락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브라이언 드 팔마의 '언터처블',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시네마 천국' 등 무수히 많은 명곡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많은 명곡을 남기고도 아카데미 음악상과는 참 인연이 없었습니다. 아카데미 협회는 "도대체 귀가 있긴 있는 거냐" 등 세계 영화 음악 팬들의 비난을 듣기도 했고 결국 2007년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명예 오스카상을 시상했습니다. 이때 시상자로 나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첫 명성을 만들어 준 서부영화의 주인공으로 아름다운 인연의 대미를 장식하기도 했죠. 그 후 엔니오는 2016년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헤이트풀 8' 영화음악으로 인생 최초 아카데미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 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약 영화 400여 편을 작업한 엔니오는 2020년 7월 6일 로마에서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많은 세계 영화 음악 팬들의 애도 속에 하늘의 별이 된 엔니오의 음악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며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상평
엔니오 모리꼬네의 젊은 시절 모습부터 쭉 그가 어떻게 음악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어떤 작업들을 통해 거장으로 거듭나게 되었는지 시간의 순서대로 보여주는 평이한 방식의 전개였습니다. 그는 능력 있는 작곡가였으며, 영화음악 감독을 떠나 영화의 배경음, 효과음, 이해의 깊이와 감정의 고양을 도와주는 음악까지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 음악 외에 다른 대중음악 작품들 또한 너무나 아름답고 마음에 쏙 들었어요. 역시 그의 재능은 아름다운 음악이 있는 어느 곳에서나 빛을 냈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며 중간에 음악이 흘러나올 때는 흠뻑 빠져서 음악 감상을 하게 되는 때도 있었는데요. 특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Deborah Theme'는 아름다운 선율에 감동하여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이렇듯 마음 깊이 파고들어 감성을 폭발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 후로도 몇 번 더 눈물을 훔쳤는지 모르겠네요. 슬픈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혀 눈물을 흘릴 만한 포인트가 없다고 생각하는 주변 관객이 있을까 싶어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나 마찬가지로 너무나 유명한 '가브리엘의 오보에', '시네마 천국'의 테마 등 아름다운 음악의 연속 공격에 감동의 눈물을 감추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두운 조망의 영화관 안에서 그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든 상태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듣다 보니 더욱 감동스러웠던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보실 계획이 있다면 정말 사운드 좋은 곳에서 흠뻑 빠져서 감상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앞으로 봐야 할 영화들
영화 음악 때문에 그 영화를 찾아본다는 것 자체가 엔니오 모리꼬네가 얼마나 대단한 음악감독이었는지 보여주는 반증인 것 같습니다.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언터처블', '러브어페어' 등 아직 보지 못한 많은 작품이 저에게 남아있다는 것이 오히려 행복한 느낌마저 듭니다. 좋은 음악을 남겨준 그에게 찬사를 보내며, 그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우리 인생의 OST로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고 영화사를 넘어서 음악사에 깊이 남겨질 거라고 생각합니다.